[정보통신신문=서유덕기자]
지난 4월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 사고가 알려졌을 때만 해도 더 이상의 대규모 사이버보안 사고는 없을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반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KT에서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은 최소 2021년 8월부터 시작된 해킹으로 2696만건의 유심 정보가 새 나간 초유의 사태였다. 국내 인구 절반에 육박하는 피해 건수, 3년여가 지났음에도 인식하지 못했다는 안일함 등 충격이 상당했다. 통신 당국은 SK텔레콤의 보안 조치가 미흡했음을 꼬집으며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기에 이르렀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국내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1위 SK텔레콤의 상황을 관망하며 KT와 LG유플러스는 이탈 고객을 유치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KT는 SK텔레콤의 사고를 반면교사 삼는다는 듯 지난 7월 15일 고객 안전·안심 브리핑을 열고 향후 5년간 정보보호 분야에 1조원 이상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계획이 무색하게 KT에서도 대형 사고가 터졌다. KT 고객들은 금전적 피해까지 본 상황이어서 국민 불안은 심화했다.
더군다나 KT는 늦장 대응으로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과 함께 사고를 감추려 했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민감 정보를 다루는 기간통신사업자라면 응당 사고 인지 즉시 관계기관과 통신 당국에 알리고 발빠르게 대처해 국민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KT는 안일하고 나태한 모습을 보였다. 부실한 보안 관리는 물론 사고 이후 대처까지 아쉬움이 크다.
디지털 전환이 속속 이뤄지면서 정보통신 인프라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 안전을 보장하며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차대한 정보통신 인프라와 서비스의 상당수를 도맡는 이동통신사들이 고품질·고신뢰 서비스를 위해 얼마큼이나 진정성 있는 자세를 견지했는지 의문이다.
그간 이동통신사들은 디지털화 흐름 속에서 통신 수요 증가와 시장 과점으로 호의호식해왔다. 그에 반해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한 투자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을 계속 받아 왔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의 지난해 매출액은 양사 합산 17조9410억원을 기록하며 3년 전보다 7.1%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설비투자(CAPEX)는 되레 20% 이상 줄었다.
KT는 지난해 유·무선 서비스 부문에서 전년 대비 소폭 많은 12조2287억원의 매출을 냈지만, 가입자망·기간망·기업통신 투자 실적은 약 9% 적은 824억원에 그쳤다. 사고 전후로 매출이 늘었는데도 설비투자는 줄인 것이다.
반면 SK텔레콤의 지난해 연간 주당 배당금은 3540원으로 2021년보다 245원 많았고, KT는 2000원으로 전년 대비 40원 올렸다.
정부는 기간통신사업자를 ‘국가 통신 인프라의 핵심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사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 산업의 진흥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통신 역무의 안정적 제공으로 공공 복리에 기여함을 참작해 사업상 혜택도 부여하고 있다.
특히 국내 통신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는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는 독점적으로 설비를 구축·보유하고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권한에 따른 책임, 즉 안정적 통신 역무 제공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통신 인프라를 둘러싼 제반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우리 경제·사회는 통신서비스의 양과 질 양면에서 예전과는 다른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기간통신사업자의 통신·보안 인프라 투자는 그런 의무의 이행에 맞닿아 있다.
통신사들이 고품질·고성능·고신뢰 통신 역무 제공이라는 본질에 소홀하지 않도록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같은 과오를 반복하는 일이 없기를,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