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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ICT산업 규제 남발…‘혁신’ 골든타임 좀먹는다
[분석]ICT산업 규제 남발…‘혁신’ 골든타임 좀먹는다
  • 차종환 기자
  • 승인 2018.09.04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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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 못 따라오는 법·제도
아이디어 창업 확대 ‘찬물’

특정 부처 ‘권한부여형’ 입법
시장자율영역 규제 “도 넘어”

선허용·후규제 방향으로 가야
산업간 이해관계 조율 ‘필수’

전세계가 4차산업혁명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산업계가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제도와 너무 많은 규제 때문에 신산업이 태동할 기회조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9일 인터넷법제도포럼 주최로 열린 ‘혁신성장을 위한 ICT 법제도 현안과 전망 세미나’에서는 이러한 국내 실정과 해결책에 대해 각계의 허심탄회한 논의가 이뤄져 눈길을 끌었다.

□ “적은 내부에 있다” 규제에 발목 잡힌 혁신

지난 6월, 승차공유 스타트업인 풀러스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업계는 사업 확장을 가로막는 규제에 결국 한 벤처기업이 항복을 선언했다는 평가다.

풀러스는 택시보다 최대 50%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는 승차공유 서비스를 내세웠다. 작년에는 하루 24시간 중 원하는 시간을 택해 카풀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출퇴근 시간 선택제’를 도입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를 서울시가 법률 위반이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아이디어 하나로 출사표를 던진 작은 스타트업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압력이었다.

이러한 논리라면 다른 공유 기반 스타트업이 설자리도 좁아지게 된다. 결국 숙박공유, 차량공유, 주차공유 등 다양한 분야 창업기업들이 모여 불합리한 규제를 성토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신산업 성장엔 발 벗고 나서는 여타 국가들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다.

미국은 온갖 불법 저작물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유튜브에 아무런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이는 유튜브가 전세계 동영상의 80%를 장악하며 세계적인 동영상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

중국은 아예 외국기업의 자국 진출을 봉쇄하고 자국 기업에는 사전규제 보다 사후규제를 적용해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웬만하면 ‘하고 싶은 거 하게’ 둔다. 물론, 몇 개 국가를 합한 것 보다 큰 내수 시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국내 기업들로선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나라는 하루빨리 산업을 키워 해외 진출을 독려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된다싶으면 싹을 자른다. 업계 종사자들 간 ‘적(敵)은 내부에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 이유다.

□ 진흥 없는 진흥법…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이번 세미나 참석자들은 정부의 규제가 이미 도를 넘어섰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는 “정부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만든 진흥법이 넘쳐나지만 세계적인 기업은 전무하다”며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진흥’이 들어간 법령만 283건이 검색됨에도 우리 기업이 과연 진흥되고 있는지 반문해볼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진흥법 제정방식의 문제점으로 △특정 부처에 주도권을 주는 ‘우리 부처 권한부여형 입법’ △본격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산업을 정의하는 ‘설익은 입법’ △다른 법률과 충돌에 대한 면밀한 고려와 해결책이 없는 ‘속빈 강정식 나홀로 입법’을 꼽았다.

김지훈 한국법제연구원 전략기획실장은 “우리 정부는 거의 모든 규제를 법령에 규율하고 규율 대상에 대해 촘촘한 그물망을 쳐놓은 저인망식 규율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 때문에 신산업이 태동할 때 법령 자체가 전혀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으며 법령 근거가 없으면 행정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기피하는 현상까지 야기 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마찬가지로 시장이나 민간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만 규제가 작동하도록 하고,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 집행을 하는 책임성 강화의 방향으로 규제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그간 정부의 규제정책을 살펴보면,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누구에게 유리한 규제인지 의심스러움을 떨칠 수 없다”며 “특히 국내 사업자에게만 적용되는 불합리한 규제는 기업이 글로벌화 시기를 놓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회는 가짜뉴스 모니터링, 검색순위 노출금지 등 민생법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일 강력한 규제시도에 핏발을 세우고 있다”며 “포털이 사기업이 아니라 경영방침의 기본적 결정을 국가가 장악하는 국영기업화 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 최소한의 규범만·이해당사자간 합의 필수

ICT산업은 속도가 중요하다. 워낙 변화가 빠른 분야이다 보니 법·제도가 산업을 따라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법·제도에 얽매여 차일피일 사업이 진전되지 않으면 금새 경쟁국에 뒤처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에 참석자들은 ‘선허용 후규제’가 관련법의 기본 모토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존 법률로 규율하기 어려운 신사업은 무리하게 개념을 정의하고 규정하기보다 최소한의 규범만을 정립하고 지속적으로 보완해가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전통 산업의 규제적 특성이 강하고 공익적 규제의 필요성이 강한 부분에 대해서는 규제영역으로 유지해야 한다”며 “규제 필요성이 약한 대신 혁신성이 강하고 공익적 규제의 필요성이 약한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규제 완화 및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 본질은 산업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데에 있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었다. 이를 제대로 조정하는 것이야말로 규제 해결의 출발이라는 지적이다.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팀장은 “기존 법률이 보호하는 영역과 규제 완화로 이익을 얻는 영역 간 의견 조율을 위한 거버넌스 확립이 필요하다”며 “네거티브 규제 도입은 기존 법률상 규제와 필연적 충돌이 예상되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체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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