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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일생, 일본 전범기업 장비로 상영… 방송장비업계 개탄
안중근 의사 일생, 일본 전범기업 장비로 상영… 방송장비업계 개탄
  • 박광하 기자
  • 승인 2021.08.14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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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독립운동 기념시설 및
전통문화예술 공연장서
일본 방송장비 무더기 사용

대체 국산품 공공에서 외면
산업 발전 선순환 형성 어려워
업계 "국산 활용책 절실" 호소

[정보통신신문=박광하기자]

 

안중근의사기념관 전시관 구역에 설치된 프로젝터. '관계자 외 조작금지' 스티커 뒤쪽으로 파나소닉 로고가 비쳐 보인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전시관 구역에 설치된 프로젝터. '관계자 외 조작금지' 스티커 뒤쪽으로 파나소닉 로고가 비쳐 보인다.

#1 1909년 하얼빈역에서 한국통감부 초대 통감을 지냈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며 일제의 침략 야욕을 전 세계에 고발했던 안중근 의사. 그를 기념하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은 국가보훈처의 국가관리기념관 중 한곳으로, 사단법인인 안중근의사숭모회에서 관리·운영을 위탁 수행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국무총리를 지냈던 김황식씨가 현재 숭모회 이사장이다. 기념관에는 멀티미디어 전시 콘텐츠가 갖춰져 있어, 관람객은 안 의사의 생애를 보고 들으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배울 수 있다. 1층 전시관 입구에 설치된 프로젝터가 안 의사의 어록을 스크린을 통해 소개하고 있었다. 3층에서는 안 의사가 순국을 앞두고 집필하던 동양평화론 소개 자료가 프로젝터로 상영됐다. 프로젝터 장비들에는 '관계자 외 조작금지' 스티커가 큼지막하게 붙어있는데, 스티커 뒤쪽으로 파나소닉 로고가 비쳐 보였다.

 

올해 개관한 이회영 기념관에 설치된 프로젝터 제품 7대 모두가 일본 NEC 브랜드 제품이다.
올해 개관한 이회영 기념관에 설치된 프로젝터 제품 7대 모두가 일본 NEC 브랜드 제품이다.

#2 지난 6월 우당 이회영 선생을 기념하는 '이회영 기념관' 개관식이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렸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009년 추진한 '남산 르네상스 사업'의 결실인 남산예장공원 개장도 함께 이뤄졌다. 개장식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에게 기념관에 유물을 기증한 우당의 후손을 대표해 기부증서를 수여했다. 한편, 야권 유력 대선 주자로 평가받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행사에 참석해 시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기념관에는 7개의 전시영상 다면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이회영 선생 및 이건영·이석영·이철영·이시영·이호영 등 6형제에 이 선생의 배우자 이은숙 여사까지의 7인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살았던 이들의 생애가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영상을 출력하는 프로젝터 제품을 살펴보니 7대 모두 일본 NEC 브랜드 제품이었다.

 

충청남도 문화예술회관에서 사용 중인 음향장비 다수가 일제 야마하 제품이다. [자료=충청남도]
충청남도 문화예술회관에서 사용 중인 음향장비 다수가 일제 야마하 제품이다. [자료=충청남도]

#3 충청남도에서 관리하는 충청남도 문화예술회관에서는 충남국악단 연주회가 개최되고 있다. 지난 6월 18일에는 '흥 내려온다 내려온다 복(福)'을 주제로 정기연주회가 열려 '영정거리', '노자노자', '와대버', '어차' 등의 음악 연주와 태평무, 해학창극, 판굿놀이 등의 공연이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200여명의 시민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좌석 간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전통 문화 예술 공연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회관의 장비 운용 내역 확인 결과 설치된 음향장비 다수가 일본의 야마하 제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음향 제어 콘솔, 메인 스피커, 서브우퍼 등 다양한 장비가 25대 규모로 납품돼 현재까지 운영된 것이다. 프로젝터 장비는 파나소닉 제품이었다.

 

전국의 독립운동 기념시설 및 전통문화예술 공연시설에서 일본 전범기업의 영상·음향장비가 다수 사용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방송장비 산업계는 이 같은 사실에 개탄하며 해당 시설들을 운영·관리하는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독립운동 기념과 전통문화 창달이라는 시설 운영 목적을 고려했을 때 국산 장비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본지가 국가보훈처,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전국의 지자체, 교육청,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기념시설 및 전통문화예술 공연시설의 방송장비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다수의 시설에서 일본 전범기업의 영상·음향 장비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이들 시설에 설치된 영상장비인 프로젝터 제품 대부분이 일본 세이코 엡손(Seiko Epson), 파나소닉(Panasonic), 닛폰덴키(NEC) 브랜드였다.

음향 장비 분야에서는 국산 브랜드 제품 이용률이 높았지만, HK, 크라운(Crown), 젠하이저(Sennheiser) 등 다양한 외산 장비를 도입·운영하는 곳도 상당수였다. 일부 시설의 경우 일제 야마하(Yamaha) 음향 장비를 채택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 시설에 설치된 일본 방송장비 다수가 전범기업 제품이라는 점이다.

과거 일본 제국·나치 독일 등 추축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벌인 침략 전쟁에서, 군수물자를 제조해 이를 추축국에 납품함으로서 전쟁 행위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가담한 기업을 전범기업이라고 부른다.

야마하는 태평양 전쟁 당시 군용 가구와 전투기용 목제 프로펠러 등을 일제에 납품했다. 파나소닉은 '마츠시타 전기'의 브랜드 중 하나로, 이 기업은 과거 조선인 강제징용으로 급성장했다. NEC는 일제의 아시아 침략 시절 스미토모 그룹 계열사로 군용 무전기 제조, 전파 경계기 개발을 담당했다. 세이코 앱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에 군용 시계를 납품한 전력이 있다.

이들 시설 관리 담당자들은 일본 전범기업 제품을 도입하게 된 경위에 대해 다양한 유형의 답변을 내놨다. 도입 일제 장비가 전범기업 제품인 사실을 몰랐다거나, 사업 수행자가 일제 방송장비를 설치했을 뿐이라거나, 당시 사업을 담당하지 않아서 경위를 알 수 없다는 등의 대답이었다. "일본산 제품을 도입한 게 불법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 현재까지 답변을 거부하거나, 자료 제출을 하지 않은 사례도 여럿이다.

사업에 맞는 성능의 국산 방송장비가 없어 일제 장비를 도입했다는 기술적 답변도 있었다. 한 독립운동 기념시설 담당자는 "시설에서 사용할만한 성능의 국산 프로젝터가 없어 부득이하게 일본 제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해당 시설에서 사용되는 일본 프로젝터 장비는 5000안시루멘 성능이었다. 다나와 등 제품비교 웹사이트에서는 국내 기업인 LG전자 및 프로젝터매니아 등에서 출시한 5000안시루멘 또는 그 이상 성능을 갖춘 모델이 다수 있는 것으로 검색된다. 안시루멘은 미국표준협회(ANSI, American National Standards Institute)가 정한 표준 단위로, 빛의 밝기 정도를 나타낸다.

국내 방송장비 산업계에서는 전범기업 제품들이 국내 독립운동·전통문화 관련 시설에 납품되고 있는 사실에 개탄했다.

업계는 국내 영상·음향장비 산업 발전 이전 시기에는 이들 시설에서 외산 제품을 부득이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다양한 외산 중에서 어째서 하필 일본 전범기업 제품을 도입했는지 의문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프로젝터 장비를 구매할 거라면 국내 기업으로는 LG전자나 프로젝터매니아가 있고, 대만의 옵토마(Optoma)나 벤큐(BenQ), 미국 뷰소닉(Viewsonic) 등에서 제조하는 제품이 다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제품의 경우 현재 1만 안시루멘 이상 모델이 없다며, 외산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일본 전범기업 제품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고 다른 브랜드를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한, 음향 장비에 대해서는 국산 제품의 품질이나 성능이 외산 못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국산 제품이 다수 채택될 정도로 국산품의 품질 우수성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올림픽이란 국제적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데는 국산 방송장비가 크고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업계는 과거 일제가 자주 독립국인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탈하고 이후 만주 침략을 시작으로 아시아를 전쟁터로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일제에 부역한 전범기업 제품을 도입하는 것은 독립운동 기념과 전통문화 창달이라는 시설 운영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라고 짚었다.

아울러, 공공 분야에서 국산 방송장비를 도입해 수요를 일으켜줘야 국내 기업들의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제품 출시가 가능하다고 의견을 냈다.

이와 관련, 국내 방송장비의 고도화 및 방송장비산업의 성장잠재력 확대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9년 9월 설립된 방송장비산업센터는 "다른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방송장비 시장 또한 수요와 공급이 서로 영향을 끼치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공공시설이나 국제적 행사 등에서 자국산 장비를 우선 사용하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안정성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국산 장비를 배척하는 경향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는 근거 없는 선입관일 뿐이다. 국산 제품들은 조달청 우수조달제품으로 등록되고 있을 정도로 품질과 성능을 인정받고 있으며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외산을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에서 국산을 사용하지 않으니 기업들은 매출이 없는 분야에 투자를 할 수가 없게 되고, 이는 수입 브랜드가 시장을 잠식하는 결과를 낳는다. 처음부터 유명한 브랜드가 있나. 자국 장비를 사용해주면서 발전해 가는 것"이라고 공공 분야의 국산 방송장비 도입을 촉구했다.

독립운동·전통문화 관련 시설의 방송장비 운용실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등 국산 장비 도입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익명을 요구한 방송장비 전문가는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전범기업 제품을 구매한 것과 관련해 예전부터 지적이 있어 왔지만,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제도가 없다보니 사업 담당자들은 소나기 피하듯 일시적 논란이 지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꼬집어 말했다. 그는 이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정치권에서 전범기업 제품의 공공 분야 납품을 제한하는 법안을 내놓는 상황에서 이들 시설 관리기관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며 "지속적인 점검을 통해 그 결과를 기관·담당자 평가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조달청이 시행에 나선 '국산제품 활용기여도 평가' 제도를 활용하면 국내 중소기업 제품 우선 도입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업계에서 제시됐다. 이 제도는 공공사업 발주기관에서 제안서 평가 시 입찰 참가자의 국산제품 활용 정도를 심사해 평가 점수에 반영하는 것이다. 소수점 아래 점수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입찰에서 국산제품 활용이 평가 기준에 포함되면 입찰 참가자들이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업계는 말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일본 전범기업 방송장비를 도입한 시설 관리기관들은 향후 장비를 교체하거나 신규 추가설치를 추진할 경우 국산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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