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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경쟁입찰'한다며 특정 외산 방송장비 요구… 제조사들 한숨
포항시, '경쟁입찰'한다며 특정 외산 방송장비 요구… 제조사들 한숨
  • 박광하 기자
  • 승인 2022.02.26 2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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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잠홀 메인스피커 앰프 교체' 사업
규격서 조건 충족 제품은 해외 L사뿐
타 제조사들, 납품 기회 박탈당할 처지

시측, 특정 제품 특혜 논란 전면 부인
"규격서 만족 제품 여럿 있다"며 자료 제시
해당 장비 제조사는 '단종 제품'으로 안내

[정보통신신문=박광하기자]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가 공개적인 경쟁입찰을 실시하면서 특정 외산 장비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물도 없이 고구마를 삼킨 것처럼 속이 답답합니다."

포항시가 억대의 방송장비 구축 사업을 경쟁입찰 방식으로 발주하면서 특정 외산 장비만 납품되도록 규격서를 제시하자, 방송장비 산업계가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고 있다. 포항시는 규격서에서 제시한 조건들을 충족하는 제품이 다수 있기 때문에 공정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확인 결과 포항시가 제시한 다른 장비는 단종된 상태였다.

포항시는 최근 '대잠홀 메인스피커 앰프 교체(사전규격등록번호 1100672, 입찰공고번호 20220218766)' 사업을 발주했다.

사업 규모는 추정가 1억7500만원으로, 오디오 프로세서 1대와 DSP 파워 앰프 10대를 포항시 본청 옆에 건립된 '대잠홀'에 교체 설치하는 사업이다.

오디오 프로세서는 음향 데이터를 녹음·재생하기 위한 하드웨어이며, DSP 파워 앰프는 디지털신호처리(DSP, Digital Signal Processing)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음향 신호를 스피커가 진동할 수 있도록 큰 힘으로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들 장비는 다양한 방송장비 제조사들이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문제는, 포항시의 이 사업은 다양한 장비와 사업자가 경쟁할 수 있도록 공개적인 경쟁입찰 방식으로 발주됐으나, 해당 사업 규격서에서 제시한 조건들을 종합해 보면 해외 L사의 특정 장비만 규격서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항시는 해당 사업 규격서를 통해 오디오 프로세서, DSP 파워 앰프가 '동일 제조사' 장비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뿐만 아니라, 국가 공인 인증이 아닌 사설 인증규격인 '밀란(Milan)' 인증을 받은 제품이어야 한다는 점도 요구하고 있다.

사업의 입찰 공고가 게시되기 전, 해당 규격서가 사전공개되자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산하 방송장비산업센터(KOBEC)는 규격서에서 특정 제품만을 납품토록 강제하는 '특정규격'을 확인했다며 포항시에 규격서 개선 의견을 제시했다.

수도권 소재 국내 방송장비 제조기업 기술자 또한 KOBEC과 같은 의견이다. 다만, 장비를 제조, 납품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발주기관에게 불리한 의견을 제시했다가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며 익명 보도를 요구했다.

포항시가 '밀란'이란 사설 인증 제품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제품의 납품을 가로막는 '알박기'라는 비판 의견도 나왔다. 밀란 인증 앰프 장비를 도입한 이후, 기존 스피커가 노후화돼 스피커를 교체할 경우에는 호환성 측면에서 동일 제조사인 L사의 스피커를 구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비판적인 의견들에 대해, 포항시는 우선 "같은 그룹의 산하 계열사들까지도 동일 제조사로 보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예를 들어, 하만 계열사인 '크라운'이나 'BSS'의 제품들이라면 동일 제조사 제품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 사업 담당자는 통화에서 "동일 제조사란 사업자 단위에서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계열사 제품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동일 그룹 계열사간 제품 허용'이란 별도의 설명을 규격서에 제시해야 정확하다"고 말했다. 포항시와 같은 행정을 벌일 경우 입찰에 참여하려는 기업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포항시는 해당 규격서 조건들을 충족하는 L사 제품 외의 다른 장비가 있다며 자료를 보내왔으나, 확인 결과 포항시가 제시한 다른 장비는 제조사 웹사이트에서 '단종(Discontinued)'된 상태로 안내되고 있었다.

포항시는 규격서 조건을 충족하는 제품이 다수 있다며, L사가 아닌 B사의 장비를 제시했다. [자료=포항시]
포항시는 규격서 조건을 충족하는 제품이 다수 있다며, L사가 아닌 B사의 장비를 제시했다. [자료=포항시]

이에 대해 방송장비 산업계 관계자는 "웹검색을 통해 클릭 몇번이면 드러날 일인데 포항시가 언론과 시민을 상대로 속임수를 쓴 것"이라며 "규격서 조건을 충족하는 다른 제품을 급하게 찾다 보니 단종된 제품인 줄도 모르고 자료에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어 말했다.

포항시가 규격서를 충족하는 제품이라고 제시한 B사의 장비는, 확인 결과 제조사 웹사이트에서 단종(Discontinued) 상태인 것으로 안내되고 있다. [자료=B사]
포항시가 규격서를 충족하는 제품이라고 제시한 B사의 장비는, 확인 결과 제조사 웹사이트에서 단종(Discontinued) 상태인 것으로 안내되고 있다. [자료=B사]

산업계에서는 포항시가 특정 제품만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규격서를 개선하지 않고 있어 사업의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고 짚었다. 포항시가 규격서를 개선하지 않고 입찰을 강행한다면 다수의 제조사들은 납품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허 기술 적용 제품을 도입하는 수의계약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공공기관은 가급적 다양한 제조사의 제품들이 입찰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낙찰자가 누가 되든 특정 장비만을 납품토록 강요받는다면, 이는 발주기관이 특정 장비 제조사에게 특혜를 주는 꼴이 된다.

한편, 포항시가 경쟁입찰 원칙을 망각하고 특정 제조사에게만 혜택을 몰아주려고 한다면 감사 청구를 해서라도 불공정 사례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산업계로부터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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